춘란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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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삶의 위안 파일명 - -
글쓴이 김건회 등록일 2001/03/23 20:25:00 조회수 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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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산야가 지천으로 울긋 불긋 물들어 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문득 바라본 하늘은 진눈깨비라도 한바탕 뿌려댈 듯 잔뜩 찌푸려있다. 계절을 느낄 여유도 없이, 언제나 무언가에 쫓기듯 숨가쁘게 살아가는 내 삶 속에 작은 위안이 하나 바로 내 사랑 ‘난(蘭)’이다.
늦은 저녁, 딱딱하기만 한 전공서적에 머리를 묻었다가 바라보는 난 잎의 曲線美는 강인한 듯 하지만 그 자태가 너무도 부드러워서 우리네 여인들의 포근한 품속 같고, 새벽 달빛에 비추어지는 영롱한 新芽는 에머럴드와도 같고, 맑은 수정과도 같고, 봄볕의 노랑나비와도 같이 어찌나 수줍은지 그 옛날 오솔길에서 몰래 숨어 지켜 보았던 첫사랑의 설레임을 아련하게 떠오르게 한다. 찬바람이 귓가를 알싸하게 쓸어주는 봄 산행길, 잡목숲 사이로 주인을 반기듯 선명한 색상과 단정한 화형으로 자신들의 미(美)를 한껏 뽐내고 있는 보춘화라도 바라보노라면 다소의 세상살이에 지친 내 삶에 더 이상의 위안이 없다.
이기심과 물욕과 생의 타성에 젖은 우리네의 삶 속에서 수정처럼 투명하고 고고한 모습으로, 어떤 시인의 말처럼 드높은 향기와 함께 구름 위에 솟은 선녀의 자태를 방불케 하는 난은 이해나 생각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별 필요가 없고 오히려 번거롭게 느껴지게 만든다. 큰 효용적 가치를 따지는 것이 아닌 쓸모없는 일에 매달리는 순수함으로 난을 키우는 마음들이 이 세상을 향기롭게 만드는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대상을 마음에 품고 그것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하물며 느낄 수 없고, 함부로 만질 수 없으며, 그 속내를 훤히 알 수 없는 애뜻한 사랑은.......... 난을 알고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주위가 아는 만큼 보이고, 더 높은 곳에 오르면 더 먼 곳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인간 영욕의 은밀한 곳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맛이 있다. 난실의 그들과 함께 있으면 다른 무엇으로 대신 할 수 없는 삶을 맛보면서 세상과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짐을 느낀다.
보통 난을 기다림의 미학(美學)이라 한다. 씨방의 포자가 蘭菌과 결합하여 생강근을 거쳐 신아(新芽)가 날때까지 십수년이 소요되며, 명품이라는 엽예품은 수만포기기의 민춘란 중에서 변이(變異)되어 나타난다. 한 촉의 잎은 6∼8년 동안 생존하며, 꽃은 화아분화를 거쳐 6∼8개월 동안 꽃대의 기간을 거쳐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영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난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의 응어리진 憤怒도, 나쁜 마음도, 그리고 외롭고 방황하고픈 모습도 말끔히 잊혀지고 만다.
우리는 난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난을 벗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렇게 早急하지도 초조해 하지도 않으면서 기다리노라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자연의 순리를 배운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보면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의 ‘길들여진다’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이미 난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서로에게 너무나 많이 길들여져 있다. 내가 난에게 주는 많은 사랑과 관심도 그것이 나에게 주는 많은 위로들에 길들여짐의 결과처럼, 난이 나에게 주는 많은 가르침에도 철저하게 길들여지고 싶다.
기다리며 살고 싶다.
더 순수하게 살고 싶다.
언제나 난에게 위로 받고 배우며 난의 자태를 간직하고 싶다.


모든 애란인의 난복이 있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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